EXHIBITIONS

한금주 그림전시회
2019.1.9~15

한금주 HAN Geum-ju

 

개인전 3

2019. 리서울갤러리

2016. 리서울갤러리

2010. 드림갤러리

 

대한민국미술대전 입선

신미술대전 특선

민전 다수 입·특선

단체 전시회 다수 참가

 

현재 일감회 부회장

한지 소재연구소 이사

 

한금주(韓金柱) 화가를 처음 만난 건 아주 오래 되었다. 새파랗던 대학원 시절이었으니 벌써 30여 년 전의 일이다. 그 시절에도 그는 지금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언제 보아도 높다란 창공을 나는 수리처럼 기고만장했었다.

무엇보다 당시 그의 작품들은 오직 고독 속에서 잉태되고 순결하게 낳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고독과 순결은 반드시 가까이 하지 않으면 안 될 그 무엇이었다. 명상과 성찰과 그리움이 있는 세계, 오로지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고독과 순결의 상태에 있을 때만이 마침내 목격할 수 환영의 정한(情恨)이었다.

그렇더라도 그 시절 한금주 화가는 이제 갓 알에서 깨어난 작고 보잘 것 없는 치어에 불과했다. 자유분방한 실험정신의 붓질이 예리하기는 했어도, 아직은 어떻게 튈지 모르는 타원형의 공처럼 정형화되지 않은 무채색이었다. 어떤 형상도 담지 않은 그저 텅 빈 백지였을 따름이다.

그런 치어가 이윽고 보다 너른 세상으로까지 유영해나갔다. 고명한 스승을 찾아 사군자부터 착실히 붓질을 시작하여 산수화로, 다시 회화에서 색채와 형상을 극도로 억제하고 해체시킨 묵직한 추상 회화에 이르기까지, 그의 평면그림 작업은 이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부단하기만 했다.

그러나 자유분방한 그의 붓질은 사군자에서 산수, 정물, 추상 회화에 이르는 노정까지 어디에도 쉬 안도하거나 혼신을 두지 못한다. 그의 붓질은 허기져 늘 방랑했으며, 회의는 깊은 물속처럼 문이 나타나지 않았다.

평면그림 작업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어떤 깊이의 세계가 상흔처럼 화두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무거움이란 항상 어떤 깊이를 안으로 품고 있기 마련이다. 풍선처럼 허공으로 붕 떠오르는 가벼움이 아닌, 어떤 풍상에도 제 느낌을 잃지 않는 그런 깊음이다.

허기진 방랑 속에서도 차마 놓을 수 없어 그가 끝까지 부여잡은 것도 오직 그 같은 깊음이었다. 오올히 화폭으로 가져와 담아내고자 애를 썼다. 무거움이 안으로 품고 있는 그런 깊음을 구현코자 한사코 몸부림쳐왔다.

그러자 붓질을 하여 색과 상을 그려낸다는 것이 더는 유의미하지 않았다. 원래의 조형과 색채를 찾아감이 다만 설지 않은 길이었을 뿐이다.

한동안 그가 그만 붓질을 내려놓아야 했던 이유다. 대신 기억 속의 물비늘과도 같은 무수한 한지 조각들을 흰 눈처럼 화면 위에 흩뿌렸다. 대초원의 한복판에 서서 장엄한 여명의 일출을 온몸으로 맞이하듯 손끝의 가는 떨림으로 흩뿌린 한지 조각들을 한 땀 한 땀 숨죽여 집어 들었다.

그같이 오랜 애태움 끝에 어느 날 계시처럼 홀연히 받아들인 지평이 곧 한지 작업이었다. 아주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났다가 마침내 집으로 돌아왔을 때의 느낌 그대로 한지 집합그림을 탄생해내기에 이르렀다. 마치 내면의 기도 소리를 듣듯 천천히 혹은 조용한 시간(Quiet Time)으로 바라볼 때 오롯이 드러나는, ‘한지 집합그림이라는 독보적이고 경이로운 세계를 비로소 접신케 된 것이다. 3년 전 리서울 갤러리에서 한금주 화가의 개인전이 열렸을 때 필자가 목격한 풍경이다.

 

모든 강에는 그 강에서만이 맡을 수 있는 고유의 냄새가 존재한다. 치어 때 먼 바다로 유영해나갔던 연어가 자신을 낳아준 강으로 용케 다시 찾아올 수 있는 것도 실은 그 냄새 때문이다.

한금주 화가도 그같이 다시금 돌아왔다. 30여 년 전 작고 보잘 것 없는 치어의 이름으로 너른 세상으로까지 유영해나갔다가, 이제는 성어가 되어 자신을 낳아준 강으로 회귀하여 돌아온 것이다.

여기서 그를 굳이 성어라 일컫는 건 다른 게 아니다. 그만큼 풍성한 세계를 살찌운 채 회귀한 때문이다. 우선 출품작들을 일별해보아도 선택된 소재

 

에서만이 아니라, 제법 굵직한 굵직한 대작들마저 눈길을 사로잡는다. 지도를 펴면 넓은 영토를 가진 제국처럼 400호에 달하는 대작 또한 없지 않아 반갑다.

무엇보다 기존에 해왔던 일련의 작업들, 예컨대 한지의 편린들을 수없이 오리고 또 붙여나간 억겁의 인연이 이뤄낸 한지 집합 작업은 보다 더 깊이가 웅숭깊어졌다. 깊음을 안으로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한층 명료해진 느낌마저 든다.

거침없이 그려나가 화폭에 담아낸 민화는 차라리 살아있다는 냄새가 절로 난다. 감로수로 씻어낸 듯 해맑은 신선함을 넘어 흠뻑 농익었다.

매화 시리즈는 유난히 색상이 도드라져 보인다. 차지도 모자람도 없는 한국화 본연의 색상, 더할 나위 없는 은은함의 착색에서 어느덧 연륜마저 묻어난다. 그리하여 어떤 작품은 그 옛날 청자 빛깔을 고스란히 재현해놓은 듯 신비롭기까지 하고, 또 어떤 작품은 붉은 매화가 만발하였음에도 꽃잎에 취하지 아니하고 가슴에 포옥 안기는 정감이 가히 매혹적이다.

출품작은 그리 많지 않지만, 다시 팝아트에 이르면 자유분방한 실험정신을 아직 다 잊지 못하게 있는 그의 기고만장함이 시퍼렇기만 하다. 소재와 붓질에서 그 끝이 무한임을 다시금 다짐케 하고 있다.

특히 눈길이 가는 대목은 전통 사군자를 변형하고 재구성하여 입체적 깊이를 추구한 매화 시리즈다. 매화 꽃잎만을 덧붙여 붓질하고 다시 반복하여 어루만지길 수차례. 마치 어디서 잔바람이라도 불어오면 화면 바깥으로 꽃잎이 뚝 하고 떨질 것만 같은 질감은 인상적이다 못해 그의 그리움을 새삼 헤아려보지 않을 수 없게 한다.

그럼에도 이번 개인전에서 선보이는 작품들 역시 한금주 화가 특유의 소박함을 기억해내게 하고 있다. 그가 완성지어 선보인 그림들은 여전히 문턱이 높지 않고 친밀하다. 그건 순전히 밤하늘에 가득한 별들을 보며 삶의 무게를 흥으로 접어낸 까닭이다. 흥으로 접어내어 삶의 무게를 가붓하게 해주는 따뜻한 위안과 먼 그리움을 잊지 않음에서다. 한금주 화가만의 붓질의 힘이랄 수 있다. 박상하 (작가)